슬프도록 날씨가 좋은 날이면 생각나는 얼굴이 되고 싶다. <BR>볼만한 연극이 나왔다는 말을 들으면 가서 보고픈 사람으로 <BR>좋은 음악감상실의 개업화환 앞에서 공중전화를 하여 불러낼 수 있는 <BR>그런 이름으로 간직되고 싶다. <BR><BR>늦은 비가 땅을 파고 있는 새벽에도 선뜻 다이얼을 돌릴 수 있는 <BR>전화전호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. <BR><BR>교양이 있는 사람이라고 특별히 무얼 하는 사람이라고 <BR>나를 아는 이들에게 기억이되기 보다는 <BR>무던하고 포근한 솜이불같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. <BR><BR>같이 다니면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걸음걸이로 <BR>같이 걸으면 앞서거나 뒤로 쳐지지 않을 보폭을 갖고 <BR>누구에게나 잘 어울릴 수 있는 무난한 색상을 띤 친구이고 싶다. <BR><BR>그래서 그네들의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덮어주고 <BR>종각에서 시청까지 아무 말 없이 걸어도 <BR>심심하거나 부담스럽게 생각되지 않는 포근한 색상을 가진 아이라고 <BR>이름 지워 불리우고 싶다. <BR>그런 색을 가지고도 가진 것을 모르는 아름다움 또한 지니고 싶다. <BR><BR>그리고 내가 알만한 분들의 결혼식이나 회갑연에 초대를 받아 <BR>축복의 대열에 서있는 영광을 얻는 것도 좋으나 <BR>산동네에 사는 나를 아는 어느 사람의 갑작스런 부고 소식을 받고 <BR>서슴없이 달려가 슬픔을 같이 하며 밤새 앉아 있을 수 있는 <BR>나눗셈의 인생을 살고 싶다. <BR><BR>똑바르고 경우를 갖춘 말들만을 담는 빛나는 그릇이 되기보다는 <BR>도덕적으로 잘못된 마음이라도 서슴지 않고 털어놓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<BR>붉은 리트머스 종이 같은 친구가 되고 싶다. <BR><BR>발전을 향하여 과속으로 질주하는 나라 뒤켠에서 <BR>아직도 흙먼지를 쏘이며 썩은 이의 부리처럼 남아 있는 <BR>군데군데 돌멩이가 박혀있는 길에 연탄을 싣고 달려가는 <BR>손수레의 바퀴같은 역할을 맡은 배우이고 싶다. <BR><BR>때로는 엄지손가락의 손톱 밑을 파고 들어가 체증 뚫는 바늘처럼 <BR>피같은 땀,피같은 눈물에 흠씬 나를 적시을수 있는 <BR>날카롭고 곧은 친구 몇 명을 가진 행복한 욥이 되고 싶다. <BR><BR>아니 단 한명이라도 좋겠다. <BR><BR>엘리후 같은 지혜로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올바른 사상과 가치관을 갖고 <BR>충언할 수 있는 사고를 할 줄 아는 성숙한 이성을 지니면 <BR>그보다 더 좋은 멋이 어디 있을까? <BR>